아사쿠라씨는 현재의 효고현 야부시 출신의 호족으로, 난보쿠초(南北朝)시대에 아사쿠라 히로카게가 주인인 시바 다카쓰네를 따라서 에치젠에 입국했습니다. 아사쿠라 다카카게 시절, 1467년 오닌의 난에서 활약한 것을 계기로 이치조다니로 본거지를 옮겼고, 시바씨, 가이씨를 추방하여 에치젠국을 평정했습니다. 이후, 다카카게, 우지카게, 사다카게, 다카카게, 요시카게로 5대 103년간에 걸쳐 에치젠국의 중심으로 번영했으며, 이 동안 교토나 나라의 귀족·승려 등의 문화인이 방문해 호쿠리쿠의 작은 교토라고도 불렸습니다. 그러나 천하통일을 노리는 전쟁 속에서 1573년 오다 노부나가에게 패배하여 아사쿠라씨는 멸망하고, 마을도 전부 불타버렸습니다.
이치조다니는 후쿠이시가에서 동남쪽으로 약 10km에 위치하며, 전국 다이묘 아사쿠라씨의 마을 터가 좋은 상태로 묻혀 있었습니다. 유적의 발굴 조사는 1967년부터 진행되었는데, 1971년에는 이치조다니성을 포함한 278ha가 국가의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또, 1991년에는 스와 야카타 정원 터, 유도노 정원 터, 야카타 정원 터, 난요지 정원 터의 4개 정원이 특별 명승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또한, 2007년에는 유적 출토품 가운데 2,343점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스와 야카타는 아사쿠라 요시카게의 아내 ‘고쇼쇼’의 저택으로, 그 정원은 유적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큽니다. 중심에 있는 4m남짓의 거석은 폭포 형태로 배치된 돌의 일부이며, 전체적으로 수평감과 수직감을 기본으로 한 안정감 있는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돌에는 에도 시대 말에 새겨진 3대 사다카게, 4대 다카카게의 법명이 남겨져 있습니다.
요시카게의 저택 터가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에 위치하며, 먼저 거친 돌의 배치에 놀라게 됩니다. 각각의 돌들이 뚜렷한 표정을 지니고 있어 박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학이나 거북이를 연상시키는 섬이 있으며, 수로가 산자락을 따라 남에서 북으로 뻗어 폭포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곳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천(池泉)정원(중앙에 있는 연못 주위를 돌며 관상하는 정원)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른 정원과는 양식이나 감각이 색다르며, 이치조다니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난요지는 3대 사다카게가 딸을 위해서 재건한 여승방으로, 저택 동북쪽의 경치가 좋은 곳에 위치하며, 정원에는 풍류를 더하기 위해 배치된 돌과 연못 샘터가 남아있습니다. 3단의 폭포와 힘 있는 돌 배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후에 장군이 되는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초대하여 벚꽃 놀이를 한 연회를 개최한 곳으로, 정원 앞에는 아름다운 수양벚나무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